III
트랜스
젠더의
친구가
되기






3 트랜스 혐오에
대항하기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낙인을 찍는 트랜스 혐오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만연합니다. 한국에서도 과거 보수개신교 단체가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주로 퍼뜨렸다면 최근에는 트랜스 혐오를 이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63 또한 트랜스젠더의 인권과 여성과 아동의 인권이 충돌한다는 허위 주장이 퍼지면서 SNS 상에서 트랜스 혐오가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혐오에 맞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살펴 봅니다.
63    한겨레. 2024. 11. 5. 「‘트랜스젠더 가짜뉴스’ 퍼뜨리는 보수 개신교…’괴물 혐오’ 조장」.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65678.html




상대의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기


온라인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단순화시키거나 왜곡된 이야기들이 떠돌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겉으로는 질문이나 정보처럼 보이지만, 이미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표현과 주장들이 반복되는 것은 일부 정치 세력이나 단체들이 이를 퍼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의 생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가 반복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그대로 맞서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이미 전제된 틀 안에서 대화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이 대중에게 위험하지 않는가’라는 주장에 바로 반박하려 한다면, 대화의 중심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편안하게 보내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 수 있는지와 같은 이야기가 사라지게 됩니다.


상대의 말을 반복하여 반박하지 않기
‘그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순간에 기존의 주장은 강화됩니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반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말이든 한 번 더 입에 올리는 순간 그 이미지와 인상은 오히려 더 깊이 각인되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누구나 코끼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따라서 반박에 집중하기보다는 아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안전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꺼내며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는 기준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모든 질문에 답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하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 문제를 볼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짧고 분명한 메시지를 반복하기
설명을 길게 하면 할수록 핵심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이나 공개된 자리일수록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길고 복잡한 설명이 아니라 짧고 명확한 문장입니다.

가령 ‘누구나 편안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기본이다’와 같은 메시지를 정해두고, 상황이 바뀌어도 같은 메시지를 차분하게 반복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반복은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전달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일상의 사람과 삶을 이야기하기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론 중심의 논쟁은 쉽게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쉽습니다.

반면에 일상과 연결된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하는 것의 중요함’ ‘눈치 보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삶의 소중함’처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돌아오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도 더욱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소수의 특별한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당위가 아닌 변화를 이야기하기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따지는 대화는 쉽게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면 더 많은 사람이 그 방향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너는 트랜스 혐오자이니 잘못되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사회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더 낫다’처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논쟁을 넘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준을 건네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두를 포함하는 ‘우리’를 만들기
혐오의 문제를 특정 집단의 이야기로만 풀어가면 듣는 사람은 ‘좋은 이야기 같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라고 선을 그어 버릴 수 있습니다. 특히 트랜스젠더와 같이 낯설거나 논쟁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어 온 대상일수록 사람들은 방어적으로 반응하거나 아예 관심을 꺼버리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 사회는 더 포용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쓰는 공간을 모두가 안전하게 만들자’와 같이 자연스럽게 더 큰 ‘우리’를 만들어낸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자신과 연결된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휴식과 자기돌봄
이 모든 과정에서의 핵심은 여러분을 지키는 것입니다. 






혐오를 마주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상당한 피로감을 줍니다. 그럴 때는 잠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지 않거나,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을 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혐오를 방치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혐오에 맞서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트랜스 혐오를 마주한다면

그래도 계속해서 혐오를 퍼뜨리는 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각 혐오의 주장에 따라 이렇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부정은 개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트랜스젠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착각이다’ ‘정신질환이다’와 같이 당사자의 경험과 고민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은 이 안내서에서 차근차근 설명한 내용입니다.

트랜스젠더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의 성별 이분법이 가하는 억압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단순하게 이해한 데서 비롯된 편견입니다. 실제로 많은 트랜스젠더는 사회가 요구하는 성별 규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표현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매 순간 성별을 묻고 법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자유로운 성별표현을 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사회가 가하는 이러한 억압은 무시한 채, 트랜스젠더 개인의 성별표현에만 주목하는 이러한 주장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는 것을 오히려 어렵게 만듭니다.

종교, 특히 기독교적 신념을 이유로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종교적 해석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같은 전통 안에서도 다양한 해석과 입장이 공존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실제로 일부 개신교 공동체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존중하고 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의 자유는 중요한 권리이지만, 그것이 특정 집단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혐오는 특정 개인과 집단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험과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서로의 존엄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트랜스젠더를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차별과 배제 없이 살아갈 권리를 가진다는 것,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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